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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들의 일그러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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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4회 작성일 18-12-24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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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관이 나라를 잡는다. 전관변호사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공권력의 한끝을 잡고, 나갔던 문을 되돌아 들어오는 전직 관료들 모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전관의 나라다. 전관은 도처에 존재하며 모든 것에 관여한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비리는 빙산의 한 자락에 불과하다. 초대형 로펌의 고문이나 사기업 임원 등으로 자리 잡은 전직 고위공직자가 휘두르는 각종 연줄과 편법들은 이 나라의 행정과 입법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뿐 아니다. 숱한 사업에 뛰어들며 수천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재향군인회나, 어버이연합과의 커넥션 혐의까지 받고 있는 재향경우회, 그 규모에서부터 활동이나 재정 등 그 모두가 비밀인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등등, 전관들이 아예 단체를 만들어 이런저런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다. 법무사, 세무사, 행정사 등의 자격제도는 지난날 퇴직공무원들이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여 권력의 끝자락을 겨냥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었다.

더러 이는 전직 관료들의 지식과 능력과 경험을 활용하거나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그들의 예우와 복지를 위함이라 한다. 맞다. 그들은 충분히 예우받을 자격이 있고 그들이 가진 자원들은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너무도 비공식적이고 변칙적으로, 편협하게 이루어지는 그 일그러진 초상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주지하듯 전관예우는 전직 공무원과 현직 공무원 사이에 꾸려지는, 유무형의 결탁에 터 잡는다. “예우”의 주어가 전관이 아니라 현관임은 이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는 강력한 불문율로 구성된다. 저 선배가 전관이기 때문에 예우하고, 자신이 전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예우하고, 그 예우하고 예우받는 관행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기에 또 예우한다. 그래서 이 전관예우는 조직 내부에서는 당연한 문화가 되어 대를 이어 물리는, 구조적 병폐로 고착되며, 결국에는 우리 사회발전의 장애로 남게 된다.

전관예우의 내용 또한 사악하다. 많은 경우 그 예우가 향하는 곳은 법과 정의, 공익과 복지가 아니라 전관을 고용한 고객의 사적인 이익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공권력의 사유화 혹은 사적 이익의 공권력화라는 퇴행적인 현상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권세가들이 공유지를 마음대로 빼앗았던 저 엔클로저의 시대처럼, “예우”라는 이름으로 법치주의는 물론 행정과 입법과정의 공공성과 공정성이라는 지엄한 시대명령까지도 전부 사유화해 버린다.

사실 고도성장 시기에는 그나마 견딜 만은 했다. 삶을 위해 모두가 관료들만 쳐다보던 시절, 전관들이 성장의 과실 상당부분을 가로채더라도 서민들 또한 뭔가 받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저성장의 늪에서 모두가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위협에 허덕이는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전관과 현관의 유착은 그 바깥에 있는 우리 모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패악이 된다. 법조의 전관예우가 사회문제화되는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법률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다수 변호사들은 그 파이의 분배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관의 예우는 전관이 아닌 변호사들에 대한 폭력이 됐던 것이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각종의 제재와 처벌이 재심을 거치면서 경감되는 현상은 또 다른 사례가 된다. 그 불공정행위의 피해자인 기업과 소비자는 대기업의 여전한 억압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예우”라는 이름의 폭력은 99 대 1이라는 사회구조를 더욱 강화한다.

그러기에 작금의 전관예우 사건들은 현 정부의 실정을 가리는 드라마성 에피소드도, 사법체계에 한정된 그들만의 리그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부패공화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대통령이나 일부 언론이 김영란법의 시행이 내수시장을 위축시켜 경제에 좋지 않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태연히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리구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조비리수사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법원과 검찰은 전관예우의 출발점이자 그 자체가 이 사건의 수사대상이다. 아울러 그것은 공직비리척결을 향해 어렵게 만들어진 김영란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특검을 설치하고 국회와의 공조를 통해 발본색원의 조치를 마련해야 함은 이 때문이다. 이 사건을 넘어 현직 판검사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전면수사로 이어져야 하고 그 결과는 공직사회에서의 전관예우에 대한 종합검진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출범하는 제20대 국회의 첫 번째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다.

- 출처 : 경향신문, 2016.05.30,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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