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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집단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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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19-08-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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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 칼럼] 엘리트 집단의 두 얼굴, 법원뿐이랴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모처럼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한 책을 식사 후 읽기 시작해서 열두시가 넘게 읽었으니 말이다. <두 얼굴의 법원>은 중앙일보의 권석천씨가 “양승태 코트”의 사법농단 사건을 최초로 알린 이탄희씨와 한 일련의 인터뷰를 기초로 쓴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과 사건이 얽히고설켜서 전체적인 경위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탄희씨 사표 제출에서 검찰 기소까지 거의 2년 동안 사건 추이를 내내 들여다본 사람이라도 머리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탄희씨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사건의 의미에 비해 감정을 절제한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한 책이기도 했다. 일개 판사인 이탄희씨의 사표에 당황한 고위 판사들이 사건을 덮기 위해 허우적대는 모습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었다. 세 차례에 걸친 내부 조사와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블랙리스트와 재판개입과 은폐 음모의 내막을 알게 되어서도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김명수 코트”가 부적절한 행위를 한 판사들의 실명과 잘못을 공개하지 않은 채 뒤로 숨는 모습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속한 이 사회의 실상이 보여서 우울했다. 위선이 일상화된 우리의 모습 말이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분야에서 뛰어남을 나타내어 우대를 받는 사람을 우리는 엘리트라고 부른다. 모든 사회에는 엘리트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엘리트에게 명예나 권력이나 부를 주어 자원배분과 상벌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기며, 그 결정의 질에 따라 그 사회의 생존과 발전이 결정된다. 엘리트가 되기 위한 경쟁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고 열려 있는가에 따라 사회의 유대감과 활력이 결정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판사는 엘리트였다. 심지어 법치국가가 아닌 경우에도 그랬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의 판사는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한국과 달리 계층의식이 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도 그렇다. 그 대우란 바로 존경이다. 다른 분야의 엘리트는 세속적인 우대를 누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판사는 세속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 왜 그런가. 그들이 수행하는 일이 그만큼 윤리적 품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품성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판사의 독립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가는 그들에게 독립성을 보장한다. 우리는 그 독립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와도 받아들이고 각자 갈 길을 떠난다. 하지만 독립성만으론 부족하다. 독립을 보장했는데 그가 편파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우리가 판사에게 독립성을 부여하는 전제조건은 그들이 판결에 있어 단지 형식적인 법에 저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면의 양심에 의한 윤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는 어떻게 아나?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규제할 수 있지만 각자의 양심은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다. 궁극적으론 그들 내면의 윤리의식과 엄격한 절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법치국가에서 판사는 종교의 사제와 같다. 그런데 그 판사들이 독립적이고 윤리적이긴커녕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도 한명이 그런 게 아니라 여럿이 작당해서 거짓말을 했다면? 자기들 안에서 그 거짓 여부를 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마저 알고 보니 거짓말을 했다면? 그리고 그걸 알고 나서도 자기들 힘으로 정화를 하지 못한다면? 

 

그런데 말이다.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개탄하는 마음도 안 생겼다. 언제는 안 그랬나? 사실 나는 한국의 법원이 독립적이고 법과 양심에 의한 판결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승진과 보직에 연연하는 관료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하라는 대로 할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지시에 순종해서 사람을 죽이고 탄압하는 데 동참하다가 입을 싹 씻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믿으면 얼마나 믿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안 드러났으면 그냥 그대로 가고도 남았을 사람들이 아닌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바로 그들과 같은 천으로 만든 옷이기 때문이다.악취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일단 가고 보는 한국 엘리트층의 두 얼굴은 법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너무도 흔하게 널려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6455.html?_ns=r2#csidx4a3977dcec068d88534837f64992243 onebyone.gif?action_id=4a3977dcec068d88534837f64992243

출처: 한겨레신문, 2019-08-20 18:02수정 :2019-08-2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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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공신뢰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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