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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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41회 작성일 18-12-28 04:22본문
“양극화가 성장과 법치 해쳐···‘큰 도적’ 없애야”
경제성장률이 높다한들 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대다수 사람들에게 성장이란 아무 의미없는 숫자놀음에 불과해진다. 성장이라는 수단적 가치가 인간의 생명과 자유, 재산권, 생존권 같은 기본가치보다 앞설 수 없음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 모두를 압도하는 지상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수단적 가치가 기본가치 위로 올라선 가치의 혼란 상태 속에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71)은 이를 ‘쿠오바디스(Quo Vadis·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불렀다. 그가 이달 초 펴낸 저서 <강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첫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사회가 성장률만 높이면 된다고 믿는 개발연대의 사고에서 벗어나 가치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길 바라며 쓴 책이다.
지난 28일 롯데홈쇼핑 경영투명성위원회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발전하려면 자유가 확대되고, 생명을 존중하고, 신뢰와 재산권 보호를 실현하는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된 사회라는 가치의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며 “성장률이 중요하지만 용산참사나 세월호 참사처럼 기본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 총장을 지내면서 청년들이 희망을 상실하고 좌절하는 걸 많이 느꼈다. 선배 세대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역사 속의 발전한 사회들이 현재와 비슷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었는가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그는 발전하는 사회를 네 가지의 범주로 묶었다. 첫째는 신분이동이 열린 사회, 둘째는 교환과 교역의 확대로 부가 증대되는 사회, 셋째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네번째는 신뢰와 법치가 이뤄지는 사회다. 그리고 이런 발전된 사회를 실현하는 방법은 자유와 생명, 신뢰,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와 이를 실행에 옮기는 조직, 그리고 이것을 이끄는 리더십이었다. 그는 이 세 가지를 합쳐 ‘사회적 기술’이라고 불렀다.
<강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그는 사회적 기술과 그것이 만들어낸 발전의 양상을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양극화로 인한 신분사회, 성장과 법치 위협”
신분 이동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기술은 시민권 제도였다. 그는 “부모 모두 아테네 시민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식만이 아테네 시민이다”고 규정한 아테네의 닫힌 시민법이 아테네의 인구를 감소시키고 경제 활력을 위축시켜 국가를 쇠퇴의 길로 이끌었다고 봤다. 반면에 일찍부터 패자동화라는 포용정책의 일환으로 열린 시민권 제도를 도입한 로마는 수백년간 번영할 수 있었다. 고려 말 이성계의 전제 개혁도 권문세족의 토지 집중을 해체하고 전호라는 반노예 신분에 묶여있던 농민들의 신분상승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은 농업의 균등발전과 농업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봉건적 신분관계를 완전히 해체해 이후 반세기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뤄낸 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면 신분이동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만들어낸 ‘코리안 다이나미즘’은 이제 그 역동성을 잃고 있다.
강 전 위원장은 “지니계수를 부동산만 가지고 보면 완전히 1%에 집중됐다. 보통 지니계수가 0.3대에 있는데 부동산으로 한정하면 0.9대에 있다”며 “이들 특권층이 재력으로 정치와 법조 등 각 분야를 장악하면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극화로 인해 다시 신분 사회가 되고 있으며, 성장도 정체되고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고 봤다. 유전무죄처럼 법치도 위협받고 있다. 권력과 부의 집중은 견제와 균형의 실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이룬다.
그는 삼권분립을 위해 특히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방안은 미국처럼 회계감사권을 의회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와 관련된 부패가 많다”며 “여당은 항상 행정권을 갖고 있으니 거론도 안하지만 행정부를 투명하게 하려면 감사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원 독립성을 이루는 핵심은 인사라고 했다. 그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사를 특정 성향의 사람으로 꽉 채워놓으면 왜곡될 수 있다. 중립적 인사로 해야하고, 성향이 뚜렸하면 성향이 다른 사람을 평등하게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 권력이 국가 권력을 감시할 필요도 있다. 그는 시민권력이 국가권력을 견제한 예로 기원전 495년 로마의 성산항거 운동을 들었다. 로마 시민들은 가혹한 조세부담에 반발해 몬스 사케르 산(Mons Sacer)으로 올라가서 1년 이상 내려오지 않고 항거한다. 일종의 파업이다. 결국 버티지 못한 귀족들은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민회가 구성되고 귀족정을 감시하기 위해 강력한 탄핵권을 갖는 호민관 제도가 도입된다.
■다산의 감사론과 ‘큰 도적’
견제 장치 없는 권력기관의 문제는 크다. 조단위대의 손실을 본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해킹사건, 청와대의 상식을 초월한 고가 물품 구매 등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강 전 위원장은 “행정부나 국정원은 국민의 수임을 받아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대리인인데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권력기관을 다산 정약용의 감사론에 나온 ‘큰 도적’에 비유했다. 담벼락을 넘어 물건을 훔치는 도둑은 큰 문제가 아니고 진짜 문제는 큰 일산을 쓰고 가마를 타고 호위병이 나팔을 불고 종사관이 따르는 큰 행차에 나서는 정부 고관이나 지방관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산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담합해 도적질하는 것을 백성의 숨을 끊는 가장 무거운 범죄로 여기고 이들을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권력 기관의 부패를 없애기 위해 싱가폴의 탐오조사국이나 홍콩의 염정공사와 같은 독립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반부패 기구를 만들어서 강력한 견제를 할 필요가 여기서 나온다. 2002년 출범한 우리나라의 부패방지위원회는 신고인만 조사할 수 있는 반쪽 자리 조사권만 갖춰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 이명박 정부 초기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되면서 고위공직자 비리 조사 기능은 사실상 식물상태가 되어버렸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8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개발연대 패러다임에서 가치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주영재 기자
■생산적 투자에 실패해 몰락한 스페인에서 교훈 얻어야
기업이든 권력이든 독점도가 높아지면 부패가 생긴다. 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총수에게 집중된 것도 같은 선상에서 문제가 된다. 그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방안으로 사외이사제 강화, 종업원 대표를 이사회에 보내는 집중투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비자가 기업을 견제할 수 있도록 3배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배 손해배상제도는 불공정행위로 손해가 발생할 경우 원사업자가 해당 손해의 최대 3배까지 배상을 하도록 한 것으로 2011년 하도급법상 도입됐다.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피해자 집단 전체 구성원을 대표해 가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그 소송의 효과를 피해자 집단 전체에 미치도록 하는 집단소송제는 2005년 증권분야에 국한해 도입됐다. 강 전 위원장은 이 두 제도를 확대·일반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려면 대기업·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를 숲에 비유했습니다. 건강한 숲은 큰나무와 작은나무, 중간나무가 잘 어울려 있는 상태라는 것이죠. 큰 나무가 쓰러져도 중간나무가 커서 큰 나무가 되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듬성듬성 큰나무만 몇 개 있고 나머지 중간 크기나 어린 나무들이 황폐해진 상태입니다. 큰 나무가 고목이 되어 쓰러지면 그냥 민둥산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은 거죠.” 그는 활력이 넘치는 건강한 경제·산업 생태계를 만들려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 벤처 사업가로 돈이 분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대륙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은을 생산적인 데 투자하는 대신 성당 건축에 탕진해버리면서 몰락의 길을 걸은 스페인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한반도 신경제가 절대적으로 필요”
스페인에 이어 17세기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네덜란드 역시 100년만에 그 지위를 영국에 내준다. 최초로 주식시장을 열고, 유럽 최대의 은행을 설립했고 제조업도 조선업을 중심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인구 200만명이라는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강 전 위원장은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남북한 경제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남북한을 합치면 인구 8000만명으로 유럽 강국과 비교하면 적은 규모가 아니다. 여기에 남한의 제조업 역량을 결합하면 ‘308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8000만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남북한 경제를 통합시켜 한반도 경제를 제대로 가동시키는 것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잠재성장률이 지금 2.5%로 떨어졌고 2020년대에는 1.7%로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경제 통합이 이뤄지면 5%까지 잠재성장률을 높여서 향후 50년간 번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중세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주목했다. 정치 체제와 종교의 벽을 넘어서 국익을 우선해 국제 무역을 확대한 것이 베네치아를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남북한 정부가 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베네치아처럼 정경 분리 원칙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적 기술은?
그는 개발 연대의 패러다임에서 생명과 자유, 신뢰와 재산권 보호라는 가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이 기준에서 평가해보니 세월호나 용산참사에서 보듯이 생명의 존엄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갈등과 불신이 넘치면서 신뢰 사회로 가는 길은 멀게만 보인다.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는 경제적·사회적 자유를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억제하고 있다.
그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사회적 기술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양극화 해소는 약자의 재산권 보호와 이어진다. “지금의 재산권 보호는 가진자의 재산권 보호입니다. 가령 임금은 근로자의 재산권인데 제대로 임금을 받고 있나. 대기업의 기술 탈취에서 중소기업을 잘 보호하고 있는가,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것은 아닌가. 경제적 약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냐는 측면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그는 중·하위층의 소득을 올려 성장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상위 20%의 부가 1% 증가하면 5년 뒤 국내총생산은 최종적으로 0.08%포인트 줄어든다. 반면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국내총생산은 같은 기간 0.38%포인트 늘었다. “상위층은 소비성향이 낮아서 부가 늘어도 소비가 그 만큼 늘지 않아 투자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위층은 소비성향이 높고, 소득이 늘면 건강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낙수효과는 없고 하위층 소득이 올라야 전체 소득이 올라간다는 말이죠.”
강 전 위원장은 복지 국가를 이루는 사회적 기술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을 들었다. 그 예로 스웨덴의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를 들었다. 그는 1968년까지 23년간 총리를 지내면서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정치인, 노사 대표들을 집합시켜 토론 모임 ‘목요클럽’을 열었다. 처음에는 싸우고 의견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졌으나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기 시작했다. 목요클럽은 결국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계기가 됐다. “스웨덴이 세금을 20%에서 60%까지 올리는 데 5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조금씩 나가야 하는데 그게 정치가가 할 일입니다.”
■“청년수당 정치싸움으로 끌고 가는 것 옳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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