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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담론과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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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39회 작성일 18-12-28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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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기 대권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성장담론을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혁신성장론을 주장하는 유승민 의원이 문재인씨의 국민성장론을 비판하고 안철수 의원의 창업국가론을 치켜세워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저급한 패거리 정치가 판을 치는 한국 정치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싸고 논쟁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논쟁이 과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헬조선’에서 탈출하고픈 청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정치적 수사를 넘어선 깊이 있는 담론과 피상적 평가를 넘어선 치열하고 건설적인 논쟁을 기대해 본다.

필자가 경제 새판짜기 칼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이 바로 혁신성장이다. 선진기술 모방과 자본축적 극대화에 입각한 개발연대의 성장패러다임은 시효가 벌써 지났으니 혁신주도 성장으로 성장체제를 전환해야 한다고, 이를 위해서는 자본축적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권추구와 같은 손쉽고 불공정한 돈벌이를 억제해야 혁신을 고취할 수 있으며, 압박과 쥐어짜기가 아닌 여유와 안정이 혁신의 토대임을 지적했다. 앞으로도 창업관련 정책을 포함하여 혁신주도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개혁정책을 다룰 생각이다.

필자는 혁신과 창업을 강조하는 유 의원의 시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그가 국민성장론에 대해 “기존의 소득주도 성장을 벗어나지 못한 분배론일 뿐, 성장의 해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비판한 것은 그야말로 아쉬움이 크다. 유 의원은 “복지와 분배만 열심히 해서 경제가 성장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복지와 분배는 혁신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필수적인 성장의 해법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학의 주류는 ‘형평성’과 ‘효율성’, ‘분배’와 ‘성장’ 사이에 상충관계를 상정하고 두 가지 가치를 조금씩 희생하면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형평성이나 분배 같은 배부른 소리는 나중에 하고 우선은 효율성과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선성장 후분배론이 득세했다. 유 의원은 분배도 무시하지 않는 입장으로 알고 있으나, 여전히 분배와 성장의 상충관계를 전제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상충관계는 불평등이 별로 심하지 않았던 시대의 이론이었고, 불평등이 심화된 이후에는 오히려 상보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시장경제에서 어느 정도 불평등은 불가피하고 이를 과도하게 축소하려고 하면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하지만, 불평등이 지나치게 커지면 이 또한 효율성과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불평등이 매우 심한 경우 분배를 개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효과적인 성장정책이다.

지나친 불평등이 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들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했으며 최근에는 경제학계의 대세가 되었다. 이는 일부 진보 학계의 주장이 결코 아니다. OECD나 IMF, 다보스 포럼이나 월가와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첨병들도 하는 얘기다. 특히 IMF가 최근에 발표한 소득불평등에 관한 일련의 연구결과는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IMF라는 기관의 권위와 중요성, 연구에 사용한 데이터의 방대함과 분석방법의 치밀함 등도 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 과거에 효율성과 성장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던 기관이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IMF는 우선 소득불평등 악화의 원인에 관해서 기술변화나 세계화 같은 근본적인 요인들만이 아니라 부자감세와 복지축소 같은 보수적 재정정책, 자본자유화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등의 정부정책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는 성장률의 하락과 성장 지속 기간의 단축을 초래한다고 결론 내림으로써 과거에 IMF가 권장해온 정책들이 불평등을 증가시켰고, 이는 다시 성장을 저해했다는 자기고백을 한 셈이다.

게다가 IMF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결코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며, 따라서 재분배로 인한 불평등 감소는 고스란히 성장률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각국 정부에 보다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권고하였다.

지나친 불평등이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의 효율성과 소비수요의 문제다. 전자는 인적자본이나 사업에 대한 투자를 막론하고 가장 능력 있고 전망 좋은 계획을 가진 사람이 돈이 없어 투자를 하지 못하고, 거꾸로 돈만 많다고 비효율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문제를 말한다. 후자는 돈이 소비할 사람들에게 안 가고 이미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몰림으로써 전반적인 소비수요가 위축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문제들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더 이상 분배 없는 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외환위기 이후 분배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까닭이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창업도 필요하겠지만 복지와 분배도 필수다. 지금 과연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선생이 제자에게 창업을 권유할 수 있겠는가? 재벌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벤처생태계는 미비한 상황에서, 혁신형 창업의 성공확률은 너무도 낮다. 또한 사회안전망이 미비하고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절대다수의 창업은 패기 있는 도전이 아니라 취업하지 못한 자의 불가피한 탈출구가 되어버린 실정이다.

혁신성장의 정책과제로 “경제정의와 시장개혁”을 주장한 유 의원이나 “공정한 출발과 경쟁, 재도전이 가능한 시스템”을 강조한 안철수 의원이나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문제다. 그런데 경제정의나 재도전이 가능한 시스템이 복지와 분배의 개선 없이 가능한가? 나아가 혁신성장은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인데, 수요의 확대가 없다면 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까?

혁신성장은 공정경쟁과 분배정의라는 두 기둥 위에 올리는 지붕이다. 이 두 기둥을 우리는 한마디로 경제민주화라고 부른다. 박근혜 정권은 경제활성화를 우선한다는 명분으로 경제민주화를 뒷전으로 밀어냈지만, 과연 우리 경제가 활성화되었나?

경제민주화 없는 지속성장은 연목구어다.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성장만 내세우는 현실을 보면서 경제민주화가 철 지난 유행 정도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출처 : 경향신문, 2016.10. 20,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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