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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추구에서 혁신추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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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94회 작성일 18-12-28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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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공상과학이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가 국제우주정거장에 ‘우주 택시’ 승강장을 건설하기 위한 부품을 탑재한 로켓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고 한다. 스페이스X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는 온라인 결제회사 페이팔,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 모터스, 태양광 업체 솔라시티도 창업하였고, 초고속 진공열차 하이퍼루프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거부가 된 후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향한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재벌그룹들이 골목상권에나 진출하고 면세점 사업에나 뛰어들고,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가족싸움을 벌이고 각종 편법을 동원하며, 총수일가의 파렴치한 사익추구와 정·관계 로비 스캔들 등 추문이 끊이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혁신은 부족하고 이권추구가 난무한다.

이권추구란 스스로의 노력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신 권력을 이용하여 남들이 생산한 가치를 빼앗아 차지하려는 행태를 말한다. 힘 있는 자들의 세련된 도둑질이다. 흔히 이권이라면 국가권력과 관련된 이득을 떠올리지만, 시장권력을 활용하여 이득을 획득하는 것도 포함한다. 최근 나라를 흔들고 있는 검찰의 부패나 대우조선해양에서 벌어진 각종 낙하산들의 약탈적 행위는 국가권력을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삼은 사례이고, 위에서 언급한 재벌들의 행태는 시장권력을 기반으로 한 사익추구다. 대형국책사업 유치에 열을 내는 지역정치나 너나없이 공무원시험에 몰려드는 것도 결국 남들이 낸 세금을 차지하겠다는 이권추구의 일종이다. 대안이 없는 약자들까지 자그만 이권추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등의 박애심 때문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결과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에 입각한 이익추구는 정성어린 노동, 현명한 투자, 그리고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에 의한 이기심의 절제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기업인들의 결탁에 의한 경쟁제한이나 불공정 행위를 시장경제의 적으로 간주했다.

이권추구는 이익추구의 한 방법이지만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시킨다. 이권추구가 만연할수록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들이 좌절하고 분노하게 되며, 혁신을 향한 투자가 줄고 열정이 식는다. 또한 스티글리츠가 강조하는 것처럼 가진 자들에 의한 이권추구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공공선택이론에서 이익추구를 선으로 보고 지대추구를 악으로 본다. 하지만 모든 이익추구가 선이 아니며 모든 지대추구가 악이 아니다. 공정경쟁이 아닌 권력에 기댄 이익추구는 선이 아니고 악이며, 혁신의 결과 누리는 초과수익과 같이 남의 가치를 빼앗아오지 않고 스스로 창출하는 지대를 추구하는 것은 악이 아니고 선이다. 따라서 필자는 혁신을 포함하는 공정경쟁과 이권추구를 대비한다.

어떻게 해야 이권추구사회에서 혁신추구사회로 전환할 수 있을까?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핵심이다. 공정거래 규제를 강화하고, 모든 이권추구 행위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와 감시 및 처벌의 주체다. 당연히 국가권력이 되어야겠지만,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스스로 이권추구의 주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국가권력에 이권추구 퇴치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정부를 불신하는 공공선택이론에서는 권력에 의한 해법과는 정반대로 시장에 의한 해법을 주장한다. 규제완화를 통해 국가권력을 이용한 이권추구의 기회를 제한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권력의 출현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완화를 함부로 하다가는 금융위기나 옥시사태와 같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자유무역이 시장권력에 대한 충분한 해법이 되지 못함은 갈수록 독점화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경제력 집중이 심한 나라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경제권력에 의한 이권추구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국가권력을 믿을 수도 시장에 맡길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실마리는 일찍이 갈브레이스가 설파한 길항권력(countervailing power)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거대기업의 권력을 노조나 시민단체 그리고 정부규제 등의 길항권력으로 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정부는 물론 노조마저 길항권력의 역할보다 이권추구에 더 눈을 돌리는 우리나라에서 갈브레이스의 논리가 통할까?

하지만 길항권력론의 핵심은 특정한 권력에 정의로운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익숙한 삼권분립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권력이 집중되거나, 나뉜 권력이라도 서로 야합하면 길항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권력이 독립성을 가지고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고 삼권분립을 강화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중앙정부 권한을 줄이고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것도, 전면적 비례대표제로 거대정당의 정치권력 독과점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으로 검찰의 수사권 독점을 막는 것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제 영역에서도 경제력 집중 해소와 반독점 규제 및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대안미디어를 자유화하여 기성언론을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장 약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운동을 육성하고, 일반적으로 약자들의 연대를 도와야 한다.

역대 정부는 지식경제니 창조경제니 내세우면서 혁신경제를 앞장서서 이끌겠다고 법석을 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이권추구를 조장했을 뿐 혁신을 고취하지는 못했다. 권력이 이익추구의 수단이 될 수 없도록 권력을 나누고 쪼개어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어디서나 이권추구가 아닌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혁신추구사회로 전환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면 혁신은 민간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2016.07.22,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의 경제 새판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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